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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렉] 꿈속의 그대 1

잘생긴 너는 누구?

※au말렉







  눈을 깜빡이자 매그너스는 하얀 길 위에 서 있었다.

“여긴 뭐…”

  분명히 고양이들과 굿나잇 인사를 나누고 침대에 누웠던 매그너스는 하얗다 못해 신성해 보이는 길을 보자 숨을 참았다. 순간 자신이 죽어서 천국의 문 앞에 서 있단 착각을 할 정도로 밝은 빛이었는데 머리 한구석에서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외쳐댔다. 꿈? 그래. 이건 꿈이구나! 손뼉을 치며 고개를 주억거린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꿈이란 걸 인식해서 그런가? 천장까지 닿아있는 새하얀 빛. 여기에 천장이 있을까? 하는 의문은 꿈이니깐 이란 단어로 모두 이해가 된 매그너스는 흰색을 제외한 그 어떤 색도 보이지 않는 길에 궁둥이를 붙였다.
  다른 색은 절대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단 길에서 –애초에 길이 아닐 수도 있다.- 유일하게 색을 가진 제 몸을 신기한 듯 구경하며 언제면 꿈에서 깰까 생각했다. 무서운 꿈을 꾸던 어린 날엔 귀를 막고 눈을 감은 후 꿈이라고 중얼거리면 곧잘 깨곤 했었다.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다. 꿈이니깐 얼른 깨야 해…!”

  옛날처럼 지금도 가능할까 싶어 했던 방법은 실패했다. 아무도 없는 길이지만 부끄러워 매그너스의 귀가 붉어졌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생각과 동시에 은은하게 빛나던 길이 발광했다.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빛에 그가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어서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데 무거운 물건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드득. 드드득! 바닥에 끌리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확 하고 위로 올라왔다. 모르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콜록거린 매그너스는 슬쩍 눈을 떴다.
  어느새 은은한 빛으로 돌아온 길에 높다란 벽들이 서 있었다. 같은 하얀색인데도 미묘한 차이로 벽이 있음을 안 매그너스가 그 앞으로 걸어갔다. 손을 뻗자 거친 질감이 느껴졌다. 이런… 읊조리듯 말하며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벽. 벽. 벽. 어딜 봐도 벽밖에 안 보여서 구멍을 뚫고 타고 올라가야 하던 차에 화살표가 보였다. 느릿하게 깜빡이는 화살표들은 ‘이쪽으로 가야 해요!’를 알려주려고 노력했는지 그의 눈이 닿자 빠르게 깜빡였다. 눈이 따가울 정도라서 눈썹을 들썩인 그는 잠시 고민하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화살표, 지나갈 때마다 빛이 사라지는 길, 끝이 보이지 않는 천장, 알록달록한 제 몸까지. 걸을 때마다 모든 것을 눈에 담으며 매그너스는 이 길의 끝에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아버지? 어제저녁을 함께 했지. 솔직히 아버지가 만드는 음식은 먹기 힘들었지만, 거기엔 많은 사랑이 담겨 있었지.
  체어맨과 쳐지? 내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나오는 꿈이니 악몽은 아니겠군. 그 아이들이 화를 내지 않는다면!
  타로? 오! 여기서까지 일을 하라고 하면 울어버릴 거야. 바로 오늘 점괘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낸 사람이 있었단 말이야.
  내 친구들? 걔네는 제발 꿈에 나왔으면 좋겠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원.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상을 떠올릴 수 없어서 매그너스는 두려움과 호기심에 발을 멈췄다. 혹시 무서운 괴물이 나타나면 어떡하지?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면? 아니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마법 생활에 질려서 마력을 봉인한 지 몇백 년이 지나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며 매그너스는 부디 이 길의 끝에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있길 빌었다. 양손을 모으고 판데모니움에서 불타는 파티를 주최하고 계실 아버지께 간절하게 빈 그는 다리를 질질 끌며 앞으로 향했다.

  앞으로 걸어갈수록 빛이 더욱 반짝여서 회색 소매로 눈을 가린 매그너스는 직감적으로 조금만 더 가면 길의 끝이란 걸 느꼈다. 후우- 숨을 내뱉고 조심스레 손을 내린 그의 눈에 파란색이 보였다. 파란색? 저 파란색은 뭘까? 자신이 아는 것 중 파란색을 모두 떠올리며 매그너스는 저게 커다란 공이나 캣타워, 아이스크림이길 바랐다. 공, 캣타워면 아이들과 놀 수 있고 아이스크림이라면 잔뜩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을 터였다. 천천히 다가갈수록 자세히 보이는 파란색은 그가 생각하던 고양이용품이나 아이스크림이 아니었다. 저기 서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그것도 큰 사람!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더 거대해지는 사람은 흑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하늘 위로 높게 솟구친 머리카락을 가진 그는 부드러워 보이는 파란색의 잠옷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위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두툼한 몸은 지방이 아닌 모두 다 근육이다. 매그너스의 직감이 그리 외치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리는 등 근육과 딱 붙은 바지 위로 드러난 엉덩이 윤곽에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그 모습 뒤로 성스러운 빛과 함께 천사의 아리아가 들리는 것 같아서 매그너스의 몸이 휘청였다.

“허억!”

  초인적인 힘으로 쓰러지려는 몸을 버틴 그는 제발 앞에 있는 이가 마네킹이 아닌 사람이라고 쉼 없이 중얼거렸다. 꿈이지만! 꿈에서라도 부디! 현실에선 성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꿈에서라도 눈요기를 하고 싶었던 매그너스의 욕망을 알았을까? 앞에 서 있던 사내가 몸을 돌렸다. 살짝 옆으로 몸을 틀었을 뿐인데도 보이는 가슴이! 얼마나 크길래 가슴이 보이냐고 입을 틀어막은 손 틈 사이로 거친 숨결이 새어 나왔다. 절로 가빠진 숨에 헐떡이며 매그너스는 빠르게 가슴에서 팔뚝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짓말하지 않고 제 머리통만 한 알통에 허공을 더듬은 그는 서서히 보이는 가슴에 자신의 가슴을 붙잡았다.
  커다란 가슴 위에 수 놓인 검은 털들이 무슨 모양을 만들었을까? 하던 매그너스의 눈이 간신히 가슴보다 위에 있는 얼굴에 향했다. 심장이 아팠다. 살면서 봐왔던 수많은 연애와 소설, 드라마, 영화에서 나온 첫눈에 반한단 말을 매그너스는 믿지 못했다. 얼마나 잘났길래 첫눈에 반해? 하며 이해 못 한단 반응을 보이던 그는 오늘에서야 그 말을 이해했다. 저 얼굴이라면 첫눈에 반할 만 하다면서 매그너스는 상대의 얼굴을 샅샅이 훔쳐봤다. 듬성듬성 나 있는 수염마저도 멋있었다. 살짝 감긴 눈, 풍성한 속눈썹이 흔들리며 위로 올라가자 그 안에 감춰져 있던 눈동자가 반짝였다.

“….”

  아름다운 걸 보자 말문이 막힌 매그너스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는데 사내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무심한 눈동자가 바닥을 훑다가 천천히 올라가며 감격에 빠진 매그너스를 담았다. 경계 어린 시선으로 한쪽 눈을 찌푸리며 살피던 그는 돌연 방긋 미소를 지었다. 햇살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미소에 심장이 터지려고 했다. 쿵쾅대는 소리가 매그너스의 귀를 때리는데 사내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멋지게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사내를 홀린 듯 바라보며 매그너스는 그의 미소가 천사의 미소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닌가요, 아버지? 어릴 적 제게 천사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해주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지만, 그는 거기에 신경 쓸 수 없었다.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사내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길고 굵은 검지로 매그너스의 입가를 톡톡 두드렸기 때문이다. 초면에 하기엔 무례한 행동이란 걸 인식하지 못하고 매그너스는 사내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사내는 다시금 손가락으로 입가를 두드렸다. 그걸로 모자라 손등으로 닦는 시늉을 본 매그너스가 정신을 차렸다.

“어…,, 어? 아!”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자마자 허겁지겁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축축한 침이 회색의 소매를 진하게 만들어서 매그너스의 얼굴 전체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게 무슨 창피냐고 생각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앞에 있는 사내는 웃음을 참으려고 했는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으나 그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웃음은 다이렉트로 매그너스의 귀에 강하게 꽂혔다. 낮고 작은 소리의 웃음소리는 진득하게 다가와서 그는 몇 번이고 심호흡하고 나서야 사내와 눈을 마주쳤다.

“미친….”
“네?”

  얼굴을 바로 앞에서 보자 느낌이 다르게 느껴졌다. 잘생김과 아름다움이 공존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이 사람은 그걸 무시했다. 꿈에서 만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건가? 만약 현실에 진짜로 있는 사람이라면… 혼자 고개를 저으며 상상을 멀리 날려버리고 일단 말을 걸려고 했다. 꿈이라도 아름다운 사람을 봤다. 현실에선 못해도 꿈에서만큼은 말을 걸 수 있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한 걸음 더 다가간 매그너스의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꿀을 발랐나? 아니면 저주? 아무리 노력해도 떨어지지 않는 입술에 안절부절못하는데 사내가 한쪽 눈썹을 들썩이며 손을 뻗었다. 그 손이 매그너스에게 닿으려는 순간.

“……아!”

  번쩍 눈을 뜬 매그너스는 멍하니 천장을 보다 비명을 질렀다. 아악!! 왜 하필 그때!! 이불을 쥐어뜯으며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말할 건데! 멍청했던 꿈속의 자신을 욕하며 매그너스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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